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카쓰카사 가즈코 (문단 편집) == 친정으로 돌아가다 == 이 사건이 있은 후, 가즈코는 친정인 황실로 돌아가서 살았다. 가즈코가 강도에게 부상을 입은 사실에 격분한 아버지 [[쇼와 덴노]] 및 작은아버지 [[노부히토]] 친왕과 [[다카히토]] 친왕은 가즈코의 안전을 염려하여 [[황거]]에서 살 것을 권유했다. 가즈코는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았으나, 이미 남편을 잃고 자식도 없는 [[과부]]의 신세이기도 했고,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의 제안을 결국 수용했다. 황실에서는 [[아카사카 이궁]]에 가즈코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. 원래 이곳은 궁정 보모들을 위한 시설로 만들어진 곳이다. 하지만 '평민 출신의 비'로 화제를 모은 미치코 황태자비는 자신의 품에서 손수 자녀들을 길렀고, 그 때문에 아카사카 이궁 내의 보모 숙소는 사실상 비어 있었기에 별 탈없이 가즈코의 거처를 마련해줄 수 있었다고 한다. 남동생 부부인 아키히토 황태자와 큰올케 미치코 황태자비, [[마사히토]] 친왕과 작은올케 [[하나코 비]],[* 아키히토와 마사히토는 셋째 누나 가즈코가 시집가서 황실을 떠난 이후에 결혼했다. 아키히토는 1959년에, 마사히토는 1964년에 결혼했다.] 작은어머니 [[키쿠코 비]]와 [[유리코 비]]도 남편을 잃고 [[과부]]가 되어 쓸쓸해하던 가즈코를 많이 챙겨주었다. 가족 휴가나 만찬 등에 초대하여 함께 어울리고, 같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, 어려울 때일수록 가즈코를 도와주기도 했다. 결혼 5년 만에 [[임신]]했으나 [[출산]]에 실패하고, 남편을 떠나보내고, 강도에게 습격당하는 불행한 일들을 뒤로 한 채 친정인 [[일본 황실]]로 돌아가 1970~80년대 [[황거]]에서 생활하면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, 작은어머니, 남동생, 올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, 가즈코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. [[파일:external/blog-imgs-55.fc2.com/2014113010125446b.jpg]] ||큰올케 [[미치코 상황후|미치코 황태자비]]와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, 여름 휴가에서.|| 1974년에는 고모할머니 기타시라카와 후사코(北白川房子)[* [[메이지 덴노]]와 측실 [[소노 사치코]]의 7녀. 후사코의 손녀 [[기타시라카와 하츠코]]는 1939년 출생한 직후부터 [[아키히토]] 황태자의 신붓감으로 거론되었으나, 평민 [[미치코 상황후|쇼다 미치코]]에게 밀려 탈락하고 [[나가코 황후]]의 외가인 [[시마즈]] 가문으로 시집갔다. 그래서 후사코는 [[이세 신궁]]에서 미치코 황태자비를 홀대했다.]의 뒤를 이어 [[이세 신궁]]의 [[신관]]을 맡았다. 1988년 가즈코가 퇴임한 후로는 바로 아래 여동생인 [[이케다 아츠코]]가 뒤를 이어 신관이 되었고, 2012년부터는 조카인 [[구로다 사야코]]가 늙고 쇠약해진 [[고모]] 아츠코를 돕기 위해 보조 신관이 되었다. 아츠코는 2017년 신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났고, 사야코가 정식 신관으로 취임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